in 우리들의 이야기
오는 4월 20일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장애인의날’이다. 지난 수십년에 걸친 노력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와 편의 시설 등이 대폭 확충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장애인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차별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특히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용어들 중에도 장애인을 비하하며 상처를 주는 표현들이 많이 남아 있어 간략하게나마 이를 살펴보며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불구자, 장애자, 장애우 → 장애인
1970년대까지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불구자(不具者)’였다. 그런데 불구자는 글자 그대로 ‘갖추지 못한 몸을 가진 사람’이란 뜻을 지녀 장애인을 너무 비하하는 표현으로 여겨져 1980년대부터는 일본식 표현을 빌어 ‘장애자’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장애자’ 역시 '놈 자(者)‘자로 끝나 '장애를 가진 놈'이라고 해석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이러한 지적에 者를 人으로 바꿔 '장애인(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최종 확정해 오늘날까지 사용 중이다.
한편 장애인을 '장애우(障碍友)'라고 부르자는 캠페인도 벌어졌다. 장애인을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멀리 동떨어진 사람이 아닌 친구처럼 가깝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장애우가 'OO의 친구'를 지칭하는 만큼 1인칭으로 쓰기 힘들고 자신보다 연장자를 함부로 친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단어 자체에서 '배려해야 할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이란 차별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이에 보건복지부에서도 장애우 대신 장애인이라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공식용어를 쓰도록 순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정상인, 비장애인 → 일반인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장애인의 반대말이 '정상인'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곧, 장애를 가진 것은 비정상이며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평등선 상에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일컬을 때 정상인이 아닌 ‘일반인’ 또는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 또 ‘비장애인’이란 표현 역시 너무 장애인의 입장에서 상당한 주관성과 편향성을 띄므로 중립성을 지닌 ‘일반인’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정신지체 → 지적장애
오랫동안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지적받아 온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이라는 용어도 ‘지적장애’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국어사전과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쓰지 않던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유독 특수교육법에서만 남아 있었다. 교육부는 2016년 3월 법을 개정하고, '정신지체 학생이 아닌 지적장애 학생으로 부르라'는 공문을 교육청에 보냈다.
문둥병 → 한센병, 정신분열증 → 조현병, 간질 → 뇌전증
장애는 아니지만, 병명 중에서도 환자를 비하하는 느낌이 나는 것들이 꽤 있다. 과거 '문둥병'이라 불렸던 '한센병'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병 자체가 흔치 않아졌을 뿐더러 오랜 기간의 순화작업 덕에 굳이 '문둥병'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다. '조현병'과 '뇌전증' 등은 비교적 최근에 순화된 용어다. 각각 정신분열증과 간질을 뜻하는데, 간질의 경우 뇌전증으로 바뀌면서 용어 자체가 폐기되었음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또한 '바보, 멍청한 정신상태'를 뜻하는 ‘치매’ 또한 '인지저하증', '노심병' 또는 영어식 표현대로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정 부위 장애 및 관용어적 표현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단어임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굳혀져 온 표현인 탓에 그대로 쓰는 차별 용어도 있다. 장님, 귀머거리, 절름발이, 앉은뱅이 같은 특정 부위 장애를 지칭하는 단어나 '눈 뜬 장님', '꿀 먹은 벙어리', '귀머거리 삼 년', '절름발이 정책' 등의 관용어 또는 속담들이 그 예다. 특히 이런 용어는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많이 쓴다. 우리 고유의 속담이고 실제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는 게 아니라 괜찮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말을 듣는 장애인들은 불편할 수 있으니 보다 순화된 표현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특정 부위 장애: 장님, 소경, 봉사 → 시각장애인 / 애꾸, 외눈 → 독안(獨眼), 척안(隻眼) / 귀머거리 → 청각장애인 / 벙어리 → 언어장애인 / 앉은뱅이 → 하반신장애인 / 절름발이 → 지체장애인 / 중풍병자 → 뇌병변 장애인 / 곱추, 곱사등이 → 척추장애인 / 왜소증, 난장이 → 저신장장애인 / 정신박약 → 발달장애
관용어적 표현: 눈먼 돈 → 관리 안되는 돈 / 눈뜬 장님 → 보고도 판단을 못하다 / 벙어리 냉가슴 → 말도 못하고 답답하다 / 꿀 먹은 벙어리 → 말문이 막히다, 말을 못하다 / 장님 코끼리 만지기 → 전체를 모른 채 어리석은 판단을 하다 /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 인내의 시간을 보내다 / 불구가 되다 → 장애를 갖게 되다 / 장애를 앓고 있다 → 장애를 가지고 있다
벙어리 장갑 → 손모아장갑
언어적 표현 뿐 아니라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일상용품의 이름 중에도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있다. 추운 겨울, 손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벙어리장갑’이 그렇다. 옛날 사람들은 언어장애로 말을 못하는 것이 혀와 성대가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때문에 네 손가락이 붙은 형태의 장갑에 '벙어리장갑'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벙어리장갑 대신 ‘손모아장갑’이나 ‘주머니장갑’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작품에서처럼 각자가 가진 이름은 곧 그의 정체성이다. 각자에게 합당한 이름이 있고 누가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비로서 그 사람의 존재와 본질이 회복되고 양자가 조화롭게 일치되는 것이다. 장애인들 역시 한계를 극복하고 이 사회에서 고귀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그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본질과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해주는 용어가 필요하며, 그 적합한 용어들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정하고 사용함으로써 보다 분명한 자아관이 형성되고 관계성이 회복되길 바란다.